종이책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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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이모는 뭐 하는 거냐고 웃으면서도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 가볍게 흔들흔들했다. 이모가 그랬어. 우리 미래에서 만나자고. 이렇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지. 이 모가 기억 못 해도 상관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렇게 미래에서 만났으니까. 
#리딩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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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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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한 오해와 원망이 최절정이던 순간, 우리는 서로의 삶에 다녀왔다. 덕분에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는 완벽하게 내 편이 되었다.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니 서운할 일도 마음 상할 일도 없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았다, 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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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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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내가 물어봤으니까. 엄마는 왜 나 안 이뻐해요, 하고." 내 대답에 엄마는 순간 굳어졌지만 곧 웃었다. 내가 솔직하고 귀여워 할머니가 순순히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 같다고. 이후로 엄마 인생이 좀 달라진 것도 같다고. "내 귀여움이 엄마의 인생을 구원했구나." "너를 귀엽게 키운 엄마 덕분이지." " "그 귀여움으로 엄마의 인생을 구원했잖아." "그리고 널 그렇게 귀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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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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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그동안 나랑 윤슬이 보면서 무슨 생각 했어? · "2023년이 되기를 기다렸지." 언니는 소심하고 여리던 동생이 제법 강단 있는 어른이 될 거 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방황하거나 좌절할 때도 별 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키가 중3 때 갑자기 큰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커졌을 때도 그러려니 했단다. 내게 강 뭐시기라는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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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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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 사고 친 거 얘기하러 갔을 때. 그러니까 이모 괜찮다 고, 기억도 잘 안 난다고 할머니한테 한번 말해 주는 거 어때? 그 럼 할머니 마음이 좀 편해지실 것 같은데." 이모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됐어." 응? 안 한다고? 왜? "내가 기억 못 한다는 거 엄마도 알고 있을걸? 내 기억이나 감 정이랑은 상관없어. 엄마 마음의 문제인 거지. 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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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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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열 달 동안 한 몸이던, 그러고도 한참을 내 품 안에 있던 아기는 이미 우리의 세상에서 한 발을 뺐다. 윤슬이는 요즘 나에 게서 부쩍부쩍 멀어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친구, 내 허락을 받 지 않은 약속, 내가 사 주지 않은 펜과 머리핀, 화장품, 닫힌 방문 너머에서 들리는 통화 목소리, 나에게는 말하지 않는 고민, 기쁨, 슬픔, 분노 들. 적당히 눈치채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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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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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담요에서 아기 냄새가 폴폴 난다. 윤슬이는 이제 키도 나만 하고 힘은 나보다 더 센데 몸에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 아기 도 아닌데 아기 냄새가 난다고 하면 윤슬이는 아직 아기니까 그 렇지,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렇게 안아 달라 재워 달라 받아 달라고 엉겨 붙다가도 갑자기 상관 말라며 방문을 쾅 닫곤 했다. 맥락 없는 윤슬이의 감정을 이해하기도 맞춰 주기도 어려웠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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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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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건 아닌 것 같아. 미래의 일 덕분에 과거가 다시 이해되기도 하고,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 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사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 시에 살고 있지." 뭔 소리야.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런 뜻이야?' " "나이를 먹으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게 되더라고. 예지 력이 생긴다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쌓이고 재조합되면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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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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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윤슬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짐작해 본다. 블록이 빼곡 히 꽂힌 레고 판을 앞에 두고 자신의 블록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고 여겼을 마음을 가늠해 본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불 편한 것도 없는 윤슬이가 부럽다. 하지만 그래서 생기는 어떤 막 막함도 있을 수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리고 편집을 너무 잘했다는 생각도.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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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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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크고 작은 삶의 문턱을 마주할 때마다 그 문장들이 떠 올랐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기가 유난히 힘든 날, 숙제가 정말 너무 안되는 날, 또 입시를 치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과 이 직을 준비하는 버거운 시간들도 그 메모 덕분에 버텼다. 어릴 때 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얼마나 별것인지 새삼 깨달았 고, 그래도 결국 나는 그 일들을 해낼 거라는 막연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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