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국의 현실에 충실히 응했다. 파리의 열망이 갑자기 소환된 건 한창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밤이었다. 직장 생활은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앞이 깜깜해졌다. 그때 그녀 앞에 전단지 한 장이 떨어졌다. ‘프랑스 유학’. 전단지에 적힌 다섯 글자를 보고 그녀는 오래전 꿈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다시 책을 들여다보
정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나에게 매일 도착할 24시간. 그 시간을 파리에서의 나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내일은 저 멀리 두고, 아니, 내일을 차라리 잊고, 오늘을 살면 어떨까. 매 순간의 결들을 풍성하게 맛보며. 다채로운 감정을 곱씹어 차근차근 알아채며. 조금은 느긋하게, 조금은 고요하게, 훨씬 더 깊게.
여기 앉아서 하루 종일을 보내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데 오래 걸렸다.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린 게 아닐까. 그게 뭐가 어렵냐고 말하겠지만, 그게 잘 되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다. TV 속에서 멍 때리는 사람을 보며 내가 살면서 저렇게 멍 때려본 적이 있었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사람. 뭐든 열심히 하려는 습성을 내려놓기 힘든 사람.
회사를 다닐 때에는 열흘이나 휴가를 낸다는 건 꿈꾸기도 힘든 것이었으니까. 용기를 내서 열흘이나 휴가를 가겠다고 선언하고 나면, 그걸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휴가 가기 전날 밤까지 일에 나를 갈아 넣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흘이나 휴가를 간다고 말하면 모두가 놀랐다. 회사 안 사람들과 회사 밖 사람들 모두.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열흘이나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사
회사 안에서 좁게, 아주 좁게 시선을 유지하고 있을 땐 그 삶만이 가능한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지를 뽑은 거라 믿고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모양의 삶들이 있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이 있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뾰족함을 품고 좁은 길을 온몸으로 밀며 나아가는 삶도 있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삶도 있다.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