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힘들었던 시기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 뒤늦게 찾아온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득한 운명의 시차.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소속도 없어진 나는 히키코모리처럼 칩거하며 보냈다. 내게 필요했던 건 그 혹한기를 함께 보내고 견딜 친구들이었다. 작업실을 같이 쓰고, 함께 밥을 먹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친구들.
제시카는 내게 영화 만들기와 소설 쓰기의 차이를 물었다. 소설은 자신의 시간만 들이면 된다. 혼자서 쓴 소설 한 편이 실패한다고 해서 사람이 폐인이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물론 책의 경우 함께 고생한 편집자와 출판사에 미안할 수는 있겠지만).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얽혀 있는 거대한 욕망과 이해관계들을 생각하면, 영화 한 편이 실패했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부
이제는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나는 운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늘 많이 기대하고 그만큼 실망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세상만사에 기대를 줄이는 것이 행복의 방편인가? 하고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실망스러운 것’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썩 즐기지 않아 집돌이 마냥 늘 내 방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와 함께 있다. 그나마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듯 다니곤 했지만 추운 겨울을 핑계로 집에 전동 책상과 좋은 의자를 마련한 뒤로는 약속이 없으면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노력만큼 얻어 가는 일을 했다면 (그 일이 무엇일진 몰라도) 그 일을 무척 성실하게 수행했을 것이다. 애초에 군 생활로 소방서에 가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거라며 불안정한 길인 영화를 해보겠다고 무모하게 덤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인생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