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불합리했다. 선량함을 고집하기 위해 지켜온 선택들이 병렬적으로 이 어지는 순간, 미래에 남는 건 원하지 않던 삶이라는 모순.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 남자와의 미래가 저주라 생각하며, 내가 해온 모든 일이 쓸모없는 짓거리로 전락하는 순간을 예 측하는 지금의 끔찍함. 어쩌면 나는 잉태되는 시점부터 악인으로 살 운명이었을까. #젊은작가청예 #오렌지
나는 분명히 원래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죄 없는 아동에게까지 못되게 굴었으니까. 하지만 감정의 구획이 허물어졌다는 걸 인지한 순간, 이 찬란한 혼재를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될 미래가 두려웠다. 오늘이 지나면 하나로 모인 감정들을 다시 떼어내 창살 뒤에 감금해야만 했다. 일일이 때와 장소에 맞게 꺼내 쓰는 번거로움을 견딜 수 있을까.
과거에 내 마음은 고체였다. 라벨을 붙이고, 적합한 시기와 장소를 골라 제자리에 보관해 뒀다. 적시 적소에 꺼내 쓸 수 있게끔. 그러나 스칼렛이 전두엽을 건드린 순간 그 모든 고체들이 액체로 바뀌어 한데 모였다. 기쁨이 고통과 섞이고, 분노가 슬픔과 뒤엉켰다.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 그래서 이래도 고통스럽고 저래도 저주스러운 사람. 무엇이 무엇인지 도통 구분하
서로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관계라면 구린 것도 아닌 척 넘어가기 십상이다. 마땅히 모순적인 일을 해도 ‘너는 예외다’라며 눈감아 주는 것은 비겁보다는 어떠한 관용이었다. 나와 친밀한 사람에게는 참된 정의가 무엇이냐, 도덕이 무엇이냐 사력을 다해 왈가왈부하는 일보다야 밥 한술 더 물려주는 것이 나를 제법 아량 넓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