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가만히 걸으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종이 아래 동전을 두고 연필로 그 위에 계속 선을 그으면 동전의 모양이 본떠지는 것처럼, 뭔가가 보이지 않을 때 어딘가를 내리 걷고, 밟으면 그게 뭔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쳇바퀴 같은 학교 밖과 안을, 도시를 하염없이 걸어 다닌 날들도, 정원에서 일부러 나뭇잎을 밟았던 날도, 이네스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조차 전부
지식, 사람들, 대화,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지 않았다. 온 세상에 윤곽선이 하나도 없고, 그저 덩어리로 보였다. 그래, 사람들에겐 생각이 있는데 내겐 항상 기분만 있는 것 같았다. 시대의 어른들, 영웅들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좋아하는 걸 하세요, 하며 꿈을 강조할 때마다 재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걸 품고 살진 않는다는 걸 잘사는 사람, 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