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P.519 중에서
인간관계란 상호 반응의 결과물이다. 내가 딱밤을 때리면 저쪽에서도 최소한 딱밤이 온다 처음엔 이상하다는 듯 내 눈치를 살피던 그녀도 곧 나와 비슷한 태도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서먹한 관계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서로 외면하는 사이가 됐다. 상대의 숨소리까지 읽으면서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상대와 근거리에 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직접 말을 걸지 않았다. 사적인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불길에 휘감겨 있었다. 고개가 맥없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셔터가 닫히듯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시야가 하나의 선으로 닫히기 직전, 나는 심홍의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누군가를 봤다. 머릿속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P.346 중에서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의 행로를 좇을 수도, 그에 대해 말해줄 사람을 찾아 나설 수도, 원망의 말을 쏟아낼 수도, 소리내어 울 수도 없었다. 내 안의 불길이 나를 태워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소처럼 눈만 껌벅이며 누워 있었다.내게 허락된 것이 있다면 머릿속 세상을 여행하는 것뿐이었다.P.209 중에서
위험은 발견된 시점에 있었다. 입술이 퍼렇고, 몸의 근육이 굳어지는 중인데다 맥박이 느렸다. 저체온증이 심화되고 있는 단계 같았다. 내 얄팍한 의학 지식으로 그 이상의 상황 사정은 불가능했다. 사지를 주무르거나 살을 문질러 체온을 올리는 방법을 섣불리 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중심 체온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빨리 따뜻한 곳으로 옮기는 게 최선이었다.P.13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