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율리아누스는 기독교인 을 죽이는 박해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지상의 삶이라는 느리고 구불구불하고 돌투성이인 길을 가도록 강요했다. 자신의 피를 이용해 터보차저가 달린 듯한 맹렬한 속도로 천국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대신 먼 훗날 그곳에 이를 가능성을 보며 지루한 인간 수명 동안 땀을 흘리게 했다. 이 전술은 교활했다. 간절히 죽고 싶은 자들에게서 순교를 박탈하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을 하면 "성격상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막힘이 없다". - 반면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면 "약해지고 속박되고 방해받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해야만 자유롭고 행복할 수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쪽을 택해요." 그녀는 자신이 조롱과 경멸을 당한 것이 퇴직한 학자가 영위하는 삶의 정상적인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나 대신 화를 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쪽을 택해요." 그렇게 할 말을 다 하고 나자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그 문제는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사랑은 늘 본능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의 혼합이에요. 물론 우리는 이론적인 건 본능적인 것만큼 인식하지 못 하죠. 그게 역사와 친족관계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은 본질적으로 인위적인 거예요. 물론 나는 그 말을 가장 좋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
이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이미 말했는지 몰라도. 그 당시 내 삶은 흥미로웠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객관적 흥미를 자아내지는 못했다. 내 삶은 예측 가능한 기대와 실망의 그래프 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반복해서.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두겠다. 모든 행복한 가족은 똑같이 행복하고, 모든 불행한 가족은 서로 다르다는 유명한 말.* 나는 늘 그가 이걸 거꾸로 말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