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낙관하고자 한다. 혹시나 내 책을 읽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잘하면 내 시나리오가 영상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오랜만에 행복할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낙관해야만 나는 한 글자라도 더 쓸 수 있다.
작가는 의도하며 작품을 만든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즐길지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관에 어떤 식으로 균열을 낼지 상상한다. 물론 작가는 결국 인간의 한계에 묶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작품은 자유로이 퍼져 나간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전혀 의도치 않았던 영감을 준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우리 세상의 아름다움 중 하나다.
그러니까 나는 세상이 나한테 좋은 평가만 해 주길 바라면서도 내가 다른 작품을 나쁘게 평가하는 건 용납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다른 작품에 나쁜 평가를 내려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 같은 만큼,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해 나쁜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동시에 나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꼭 나를 공격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
그런데 동시에 나는 내가 평가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 날이 다가오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좋은 성적이 나오면 아주 기뻐한다. 똑같이 나는 내 작품을 보고 다른 사람이 좋은 평가를 남겨 주고 책 판매량이 높으면 무척 기분이 좋다. 어떻게 보면 작가라는 직업이 대중의 평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직업을 택했을 수도 있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그 직업이 주로 하는 일로 인한 고충도 있지만 직업 자체의 전문성과 별 관련은 없지만 꼭 해야 하는 일에서 오는 고통이 정말 크다. 좋든 싫든 우리는 행정적인 작업을 해야 하고 사내 사람들과 정치를 해야 하며 갑이 되는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다.그리고 당연히 작가도 마찬가지다. 사실 매일 앉아서 글만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