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 면 안 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막내딸보다도 앳돼 보이는 수녀님이 었다. 저 나이에 어쩌면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있었 을까? 내가 만약
그중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데······'라고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 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 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신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내가 억울하다 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나는 그닥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죄가 있다면 어디 말해보시지 하는 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십자가 밑에서 밤새도록 몸부림 치며 구해도 얻어낼 수 없었던 응답이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았을 때 들려올 게 뭐였을까? 그때 계시처럼 떠 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뭘
비록 육신의 소멸과 함께 사라질 덧없는 기억이지만 나 는 충만감을 느꼈다. 내 육신이 밥을 먹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것처럼 내 마음 또한 좋은 추억의 도움 없이는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지킬 자신이 없었기에. 가장 어려울 때 신세 진 이곳에서 얻어 가진 좋은 추억의 힘을 믿을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왜 이럴까? 그 부인의 하소연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거짓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말도 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심통이 났고,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어쩌자고 고 통에 있어서조차 교만하고 싶어 하는가?
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적에도 남의 불행에 접했을 때, 마음 아파하기에 앞서 내 행복을 재확인하며 대견해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으로 돌아갈 일은 두려웠고, 나에겐 죽음보다 무서운 고통이 타인에겐 단지 흥미나 위안거리밖에 안 되는 인간관계가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지어내셨다는 말씀이 믿기지
부인도 아마 순식간에 자기의 근심이 가벼워진 것에 놀라고 있겠지.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예서 제서 자기들의 근심이나 걱정을 위로 받으려고 내 불행을 예로 들어가며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