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먼지를 가리켜 '제자리를 벗어난 물질 matter out of place' 이라고 말했던 것은 유명한 표현이다. 유해동물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유해 동물은 제자리를 벗어난 동물이다. 하지만 어떤 상태가 제자리를 벗어난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당연히 인간이다...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감각이란 유 대-기독교적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서구인은
곰은 연어를 강에서 주변 숲으로 옮기는데, 주로 먹다 남은 머리와 뼈를 버리는 방식이지만 배설물 형태로도 옮긴다. 그 양분이 토양을 살찌운다. 곰은 또 하구의 땅을 파헤친다. "연어가 사라지면 곰이 사라지고, 곰이 사라지면 숲이 사라집니다." 네아슬로스의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다소 전체론적인 관점으로 봅니다."
참새 제거를 시도했던 나라가 중국과 프랑스령 알제리만은 결코 아니었다. 프리드리히 2세 치하 프로이센은 1744년에 참새 학살에 새 롭게 착수했다(첫 시도는 1656년이었다). 1790년대가 되자 프로이센 사 람들은 참새가 없으니 애벌레들이 과실수를 깡그리 먹어 치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주의 식민지 정착민들은 제 손으로 참새를 도입하고서도 나중에는 독, 총, 고양이로 새를 죽이
흑인인 셸은 도시에서 코요테로 산다는 것과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고 말한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분열 되는 경험'이다. "나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내가할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면서 애쓰지만, 다른 수많은 이유 때문 에, 가끔은 전적으로 불공평한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악마화되는 경험 입니다." 가령 닭장이 습격당하면 사람들
우리는 우리 삶에 들어온 고양이에게 책임이 있다. 그것이 야생의 길고양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양이의 삶과 그들이 일으키는 죽 음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보든, 긴요한 설치류 방제책으로 보든, 생물다양성에의 심각한 위협으로 보든, 고양이가 그곳에 있는 것은 우리가 고양이를 그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양이가 더 많은 종을 멸종시킬지
에마 메리스가 『야생의 영 혼』에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침입종'이라는 단어를 휘두를 때 신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메리스는 이렇게 적었다.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외래종'을 나쁜 침입자로 가정하고 온전한 생태계 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패러다임 대신에, 섬의 생물종들이 새로 도착한 생물종에게 유난히 취약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
"바바리비둘기와 무슨 작업을 해 보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시킬 수 없습니다." 르페브르는 말한다. "녀석들이 그 작고 귀여운 얼굴로 우리를 빤히 보면서 이렇게 말하거든요. '먹이가 공짜가 아니라니 무슨 뜻이에요? 내가 일을 하거나 뭔가 배워야 한다고요? 미쳤어요?" 비둘기가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먹이를 스스로 구하는 것이 비둘기에게는 늘 해 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토착 원주민 집단들이 늑대를 대한 태도와 전혀 달랐다. 콜먼에 따르면, 가령 내러갠싯족 같은 일부 원주민도 늑대를 죽였으나 무차별적으로 죽이진 않았다. 사람이 덫으로 잡은 사슴을 늑대가 훔친 경우에만 죽였다. 생명에 생명으로 갚는 식이었다. "원주민은 잘못을 저지른 개별 동물을 죽였다." 콜먼의 말이다. "영국인은 종 전체를 처벌 했다. "
1879년대와 1880년대에 처음 등장한 비둘기 관련 기사는 비둘기를 쏘는 사람들을 개탄하며, 사냥꾼들이 '야만적 살생'을 저지른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미워한 새는 참새였지 비둘기가 아니었다. 참새는 '게으르고' '뻔뻔한' 새였고, 비둘기는 고결하고 순수한 새였다. 미국인의 식탁에 닭고기가 오르기 전, 도시 거주자는 비둘기를 먹었다. 제롤맥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