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과학 덕분에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지나 친 자만을 고쳐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과학 혁명들이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지녔던 특성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기존의 신념을 차례차례 부숨 으로써 인간의 교만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은 옳은 것 같다.
정부 규제 중 일부는 근본주의적 인본주의의 시각을 취하는 것 같 다. 가령 유럽위원회는 "인간은 인공적으로 변형되지 않은 유전적 패 턴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천명했다. 위원회의 발언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약을 권리처럼 표현한 점이다. 그렇다면 위원회는 자연 질병들을 비자연적 방법으로 치료하지 않는 것도 인간 권리로 천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몇몇 활동가들이
로봇공학(강력한 AI) 분야에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미래의 비 생물학적 지능이 자유, 관용, 지식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 인간 적 가치들을 최대한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는 최고의 방 법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의 사회에서 그 가치들을 극대화하 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인류의 능력은 매우 확장될 것이고, 굉장히 지적인 이 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인간은 금붕어에서 진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금붕어를 적 대하고 깡그리 죽여야 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미래의 인공지능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인간에게 먹이를 줄지 모른다. 인간보다 10~18배 정도 IQ가 높은 기계가 있다면, 당신은 그 기계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겠는가? 적어도 경제만큼은 그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겠는가? -세스 쇼스탁
나노봇 기술이 의미가 있으려면 지적으로 설계된 기기들이 수조 개 규모로 생산되어야 한다. 그만큼 많이 만들어내려 면 생물계의 방법을 본따 그들에게 자기복제력을 주는 편이 쉬울 것 이다(인간도 하나의 수정란이 수조 개의 세포로 분화한다). 그 경우, 생물학 적 자기복제에 문제가 생기면(가령 암이 생기면) 생물학적 파괴 국면이 야기되듯, 나노봇 자기복제를 통제하는 데 문제가
그것은 마치 쟁기를 적극 옹호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계속 버릴 것을 주장하겠지 만, 그럼에도 어쨌건 쟁기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제임스 휴즈, 트랜스휴먼 * 연합의 간사이자 트리니티 칼리지의 사회학자, '인간은 포스트휴먼이 되는 것을 환영해야 하나 저항해야 하나?'라는 주제의 토론 중에 *인류가 포스트휴먼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중간단계 격으로, 여전히 각종 제약을 겪
캔버스에 아무렇게나 붓을 그으면 그건 그냥 페인트 자국이다. 하 지만 적절한 방식으로 이리저리 조직하면, 그때는 단순한 물질을 초 월해 예술이 된다. 아무렇게나 나열된 음표는 그냥 소리다. '영감 어 린' 방식으로 배열되어야만 음악이다. 아무렇게나 부품을 쌓아올리 면 그냥 물건의 나열이다. 혁신적인 기법으로 조립해야만, 아마도 모 종의 소프트웨어(이 또한 하나의 패턴)를 첨
비생물학적 지능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주장에 어떻게 답해 야 좋을까?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는 그 주장을 승인하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이란 게 결국 우리 자신일 테니 생물학적 지능과 비 생물학적 지능 사이에 또렷한 구분이 있기 힘들다. 또 비생물학적 개 체들은 너무나 지적이어서 다른 인간들(생물학적 인간이든, 비생물학적 인간이든, 그 중간이든)을 설득해 자기들의
비생물학적 존재들은 자기들도 감정적이고 영적인 경험을 겪는다 고 주장할 게 뻔하다. 그들, 아니 어쩌면 미래의 우리들은 스스로 사 람이라 주장할 것이고, 사람이 겪는다고 주장하는 온갖 감정적, 영적 체험을 느낀다고 주장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주장도 아니다. 그들은 이런 감정들과 결부되는 것으로 보이는 갖가지 풍성하고, 복잡하고, 미묘한 행동을 증거로 내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