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드라마와 영화를 보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남자……. 어느 시점부터 실제 인간들이 화면 안에서 사랑을 연기하는 모습에 몰입할 수 없게 됐다. 제 아무리 선남선녀가 등장해서 세기의 순애보를 보여준다 한들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무게가 제법 나갈 텐데도 거뜬히 들고는 다시 집을 나서려고 했다. 나는 돌아선 가람의 등 뒤로 흉물스러운 것이 들어 있는 가방을 던지며 말했다.“야, 이것도 다 가져가.”가람은 뒤를 돌아 가방을 주우며 나를 보았다. 또 나왔다. 저 표정.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나는 오히려 선수를 쳤다. 가람에게 따졌다."그러는 너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현실 남자에게는 이제 아무 감정 없음. 사랑 없음. 이해 없음. 의미 없음."실제로 세진의 목소리 외에 현실 남자란 내게 있어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거리의 비둘기들과 다를 바 없었다. 행동반경 10미터 안에서 어슬렁거리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발견하는 즉시 저 멀리 돌아서 간다. 비둘기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면 나는 그 자리에서 온몸이 굳어버린다. 겁에 질려 머
-엥? 완전 미친놈이네!절대 성가시다는 티를 내어선 안 됐고, 그렇다고 과하게 반응해도 안 됐다. 남자친구 욕을 대신 해주는 것도 적당 선에서 그쳐야 했다. 남자친구를 향해서 심한 비방의 욕설을 하거나, 헤어지라는 둥, 너는 왜 똥차 콜렉터냐는 둥의 도를 넘는 말을 하는 건 절대 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