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기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불확실성 역시 소중한 가치임을 우리가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우려한다. 사람은 불확실한 상태에서만 결단할 수 있다. 그리고 결단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운명에 맞설 수 있다. 모든 정보를 아는 상태에서 최적의 해답을 고르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인지능력 테스트다. 조지
뒷자석에 승객이 있을 때 택시 기사는 내비게이션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렵듯이, 인간 의사도 AI 진단 도우미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때 그의 수입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그의 지부심은? 그의 권한과 책임은?알파고가 등장했다고 프로기사들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의 권위는 추락했다. 특히 교육분야에서 그런 일이
그런데 설사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사실 그런 인간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그리 대단한 성능의 인공지능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요즘 난리를 보면서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 비단 인간적 가치만인가 싶다.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사상가를 기다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가지 말고, 이 문제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런 활동을 사회가 지원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인문학판 맨해튼 프로젝트를 벌여야 한다. <단상> 역설적으로 AI시대에 인문학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인
미국 NSA(국가안보국)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래서 신나게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사생활 정보를 감시하고 수집했다. 그것은 모든 수사기관의 본성이며, 『1984』는 그런 본성을 비판하는 강력한 개념을 창조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NSA 기밀자료를 폭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도 『1984』였다. 스노든의 폭로에 많은 언론인이 경악한 것도 『1984』가 떠올라서
나는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 가치 있는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만 나온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기술이 가치를 왜곡하고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길을 잃었다. 신기술이 우리를 귀찮은 잡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여가시간을 늘려줄 거라는작은 기대조차 품기 어려울 정도로. <단상>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는 생각에 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