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작은 일들은 너무 시시하고 나머지는 너무 경이로워서 중간이 없는 듯하다. 일상적인 가십도, 그 남자가 그랬다더라, 그 여자가 그랬다더라는 뒷이야기도, 우여곡 절도, 이곳에는 없다. 그저 아주 여러 번의 선회가,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아주 많은 고찰만이 있다.
치에는 운동을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실험실 창밖을 내다본다. 무중력 상태의 단발이 가만히 일자로 선다. 남은 평생 궤도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모든 건 무사할 것이다. 엄마는 치에가 지구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다. 이건 마치 의자 뺏기 놀이와 같다. 모두가 앉을 의자는 부족하지만, 노래가 나오는 한 의자 개수는 중요하지 않고 모두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멈춰
지구에 있을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행성이 아닌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지구에서 태 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로만은 선실에 둔 기록지에 88번째 줄을 더할 것이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셀 수 있는 것으로 묶어 두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중심마저 떠내려간다. 우주는 시간을 조각낸다. 그러니 일어나면 매일을 기록하라고, 지금은 새날의 아침임을 되뇌라고 훈련 때 들었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새날의 아침이다.
모든 질문의 답은 지구다. 지구는 환희에 찬 연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가 잠들었다 깨어나고 자기 버릇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지구는 이야기와 기쁨과 그리움을 잔뜩 안고서 아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다. 이들은 뼈의 밀도가 조금 낮아지고 팔다리가 조금 가늘어진다. 눈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광경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