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장래 숱한 고난을 겪고 숱한 비극을 겪은 뒤에 태조 적부터 면면히 물려 내려온 사직의 소멸까지 친히 눈으로 보고, 왕자로서 능히 겪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일을 다 보아야 할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영특한 눈, 총명한 눈으로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한 말을 듣지를 못한 것이었다.
아무런 악정 아래서도 반항이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르는 이 어질고 착하고 기운 없는 백성과, 선정은 베풀고 싶지만 대신들의 낯이 어려워서 행하지 못하는 상감과, ‘선정’이라는 말과 ‘악정’이라는 말의 의의도 모르는 위정자들과, ‘의식’이라는 것을 인생의 최대 중요사로 여기고 있는 선비들?이런 사람들의 모임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신유년이 고요히 타고 넘어갔다. 비가 오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