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누가 먼저 다시 말을 하기도 전에 타닥, 타탁, 느낌이 온다. 이제 무슨ㅊ일이 닥칠지 나는 모른다. 발작이 서서히 내 몸을 휘감고 돌기 시작한다. 아빠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무엇이 됐든 다음 순간 자유롭게 날아오를것이다. 어차피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내 고통을 끝낸다고? 그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빠가 무슨 권리로 나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단 말인가? 대체 아빠가 무슨 권리로 내 고통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단 말인가? 내 곁을 지키지도 못한 주제에! 지금은 말뿐이지만 그 말이 행동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을까?
반 친구들을 저능아라고 부르는 건 단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지체라는 말은 '느리다'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단지 느린 부류의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한데,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속도로 처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정상인들이 우리를 저능아라고 하니까 우리는 저능아가 되는 거다.
오로지 발작이 내 삶의 멋진 일부이자 내가 사랑하는 부분 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 발작 여행은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현실이자 현실과 다름없이 완벽한 기억을 자랑하는데, 두 달 전에는 형과 친구가 윙윙거리는 난롯가에서 전화로피자와 열두 병 들이 맥주를 사자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