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빤지 뚜껑에서 얼굴을 내밀어 보니 의외로 바로 아래의 마루방보다도 훨씬 밝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로 이어져 있는 가늘고 긴 다락방 좌우에는 장지 종이를 바른 미닫이 살창이 몇 쌍이나 가로로 이어져 있었다. 살은 어른의 주먹 정도 크기로 사이가 벌어져 있고 격자도 가늘다. 그래서 비가 온다고는 해도 낮이면 바깥에서 빛이 충분히 비쳐든다. 장지 종이의 하얀색이 눈부실 정
가초의 잘린 머리와 눈이 마주치자, 하쓰요의 마음은 순식간에 마부치무라 마을에 큰불이 일어났던 날 밤으로 끌려 돌아갔다. 속옷 한 장에 가슴도 다 드러낸 차림으로, 화상 물집이 생긴 발바닥을 보이며 한 발짝 또 한 발짝 물을 헤치고 나아가듯이 하쓰요에게 다가오던 가초. 그 뒤에서 산처럼 쌓인 건물 잔해를 튕겨 내며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지로가 귀신처럼 나타나더니 산도山
입에 넣으니 침이 왈칵 나왔다.“맛있어!”머릿속의 모든 생각이 날아가 사라진다. 하쓰요는 먹느라 정신이 없어졌다.먹는다, 먹는다. 입과 젓가락을 움직인다. 네 번째 상의 붕장어구이까지 먹었을 때, 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호흡하듯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붕장어를 한 조각 입에 넣은 채 눈을 들어 보니 마쓰에도 네 번째 상까지 와 있었다. 하쓰요가 만
그때였다. 하쓰요의 시야 구석――자세히 말하자면 왼쪽 눈 아래쪽을 무언가가 스쳤다. 덤불이 소리를 내고 빗방울이 팟 튀어 흩어지는 모습도 보였다.한 손을 창살에 걸친 채 잠시 얼어붙었다가, 다음 순간 하쓰요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아까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분별도 조심성도 날아가 버렸다.왜냐하면――지금 눈 아래를 스치고 간 ‘무언가’는.머리를
마쓰에는 붕장어구이와 새우 산초구이를 만드느라 바빴기 때문에, 하쓰요는 참마 매실초 무침과 이색달걀二色卵을 만들었다. 삶은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고 각각 잘게 다져서 소금과 설탕으로 살짝 간을 한 후, 네모난 모양으로 위아래 2단으로 깔아 잠시 눌러 놓았다가, 굳으면 끝에서부터 먹기 쉬운 두께로 썰어 나간다――마부치무라 마을에서였다면 꿈에도 나오지 않을, 어째서
큰비도 큰바람도 가뭄도 없다. 화재도 당하지 않고 지진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돌림병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해충도 생기지 않으며, 짐승으로 인한 피해도 없다. 누에 님은 질 좋은 실을 토하고 점점 늘어난다.“단 하나 예외는 전쟁이다. 이것만은 지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초래하는 것이라 산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어.” #리딩스타트
“이쪽 판자문 너머에 화로가 파인 마루방이 있다. 숯도 장작도 갖추어져 있고 냄비도 있으니 빨리 죽을 끓여 주도록 해라. 내 눈에는 하쓰요가 당장이라도 굶어 죽을 것 같아 보이는구나.”그러더니 살짝 비딱한 눈빛이 되었다.“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찹쌀죽은 좋아한다. 내 몫도 만들어 준다면 고맙게 생각하겠다.”그 말에 마쓰에는 얼굴 가득 활짝 웃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랬더니 형님은 질투를 해소하는 건 쉬운 일이다, 너도 색시를 얻으면 된다고 했지. 하지만.”――혼인을 한다면 형님이 먼저지요.“내가 대꾸했더니 형님도 얼버무리는 기색 없이, 듣기에 따라서는 혼담이 이미 정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을 했어. 캐물어 보니 그렇게까지 확실한 의미는 아니었지만.” #리딩스타트
지금 발톱이 나와 있는지 어떤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달려들어 세게 후려친다면 무사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발끝이다.그렇다,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한 필의 들개였다. ‘마리’가 아니라 ‘필’. 그렇게 세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 덩치가 컸다. 만일 하쓰요가 이 들개의 등에 올라탄다면 두 다리가 대롱대롱 매달릴 것이다. #리딩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