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nge Watching-몰아보기, 정주행(12)오로지 바라보기만이 의미를 상실한 소비의 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12)오로지 금식하는 영혼만이 바라볼 수 있다.(13)바라볼 수 있는 자는 자기를 비워,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14)종교는 사물을 향한 주의를 전제한다. 종교적 주의는 '추구하기'가 아니라, '달라붙기'가 아니라 '바라보기'다.(15)디지털화는 우리를 만사가 곧바로 처분 가능
그야말로 절실하게 품고 있던 무언가를 거론했다. 그녀가 내 삶에 들어온 시기는 나 자신도 저 힘을 감지한 때였다. 위로부터 온 힘, 나보다 더 강한 힘, 성 프란체스코가 자주 기도한 곳인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에서 1937년에 시몬 베유를 무릎 꿇린 힘. ㅅㅅ
오늘날 종교가 처한 위기를 단순히, 특성한 믿음 내용들이 타당성을 상실한 탓으로, 우리가 더는 신을 믿지 않는 탓으로, 또는 교회가 신뢰를 상실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이유들이 신의 부재를 일으킨다. 한 가지 이유는 주의의 몰락이다. 종교의 위기는 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기와 듣기의 위기인 것이다. 신은 죽지
사실맹이자 실재맹인 사람은 거짓말쟁이보다 진실을 더 크게 위협한다.저자에 따르면 최근 유행하는 가짜뉴스는 단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성 자체를 위협하는 ‘탈실재’이다. 거짓말은 반박에 의해 그 기만이 탄로 나는 반면에 탈실재는 반박 자체를 거부한다. “사실맹”들은 하나의 거대한 가상 세계를 꾸며내고 그곳만의 정합적인 진실을 만들어낸다. 정보 사회에서 공론장과 민주
규율체제에서와 달리, 정보체제에서는 ‘몸과 에너지’가 아니라 ‘정보와 데이터’가 착취된다. (중략) 사람들은 ‘데이터 가축’이자 ‘소비 가축’으로 격하된다.‘나는 왜 한병철을 읽는가?’에 대한 답을 다시금 깨닫게 한 문장이다. “데이터 가축”과 “소비 가축”은 한병철의 장점 - 탁월한 조어 능력 - 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가 만든 단어와 문장은 서늘할 정도로 명징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