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의 면도날”은 많이들 아는 반면, “오컴의 빗자루Occam’s broom”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두 표현 다 14세기 영국 철학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의 이름을 차용했지만, 실제로 그 철학자가 옹호한 연구 방법론을 가리키는 “오컴의 면도날”과 달리, “오컴의 빗자루”는 훨씬 더 나중인 2002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분자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Traume』을 쓴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 20세기 중반의 흑백 꿈을 역사적 특이 현상으로 평가한다. 그 현상의 원인은 당대의 첨단 기술인 흑백 영화와 흑백 텔레비전이다. 흑백 동영상을 시청한 경험이 꿈에 대한 기억을 왜곡하여 꿈은 흑백이라는 그릇된 통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시절의 선도적인 꿈 연구자 캘빈 홀Calvin S. Hall마저도 천연
기계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질수록, 인간의 작품이 더 귀하게 취급될 수는 없을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성형 AI들이 가할 충격이 우리의 성찰을 촉구하고 자기 이해를 보완하여, 결과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작품이 더 귀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오기를 5
흥미롭게도 유창혁 사범은 기사들의 성장이 초반에는 빠른데 중후반에는 오히려 더 느린 것 같다고 했다. 훨씬 더 전에 나는 가수 김창완의 푸념을 역시 텔레비전에서 들은 적 있다. 본인이 자랄 때는 오디오 장치가 드물어서 음악이라면 뭐든지 참 귀했는데, 지금은 너무 흔해서 탈이라고 했다. ㄱ
대목에서 우리는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이 미국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을 계승하여 강조하는 “빌려준 지향성 논제Thesis of borrowed intentionality”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논제에 따르면, 지향성의 원천은 오로지 의식뿐이다. 그 밖에 기호, 단어, 문장 등이 지향성을 띠는 것은 오로지 의식이 자신의 지향성을 그것들에 빌려준 덕분이다 ㅇ
20세기의 또 다른 주요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는 유고로 남아 거의 잊혔다가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저서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에서 쿤 상실의 사례라고 할 만한 것들을 언급한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뱃사람들은 배 위에서 해수면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바닷물의 흐름을 파악했다. 수면의 물결은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므로, 그것은 결코 간단한
“쿤 상실Kuhn loss”이라는 개념이 있다.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개념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철학자 중 하나인 토머스 쿤Thomas Kuhn과 관련이 있다. 한 시기의 과학 연구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을 주목하고 패러다임의 교체를 획기적 혁명에 빗댄 것으로 유명한 쿤은 그렇게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일부 지식이 상실될 수 있고 실제로 상실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쉽
1903년 6월의 어느 일요일, 피에르 퀴리는 라듐 생산에 관한 세부적인 문의를 해온 미국 기술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마리와 자신이 아는 라듐 정제에 관한 모든 지식을 알려주었다.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미 퀴리 부부는 자신들의 발견으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과학의 정신에 반한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퀴리 가문The Curies』의 저자 데니스 브라이언De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