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송에 사대한 것 말고, 거란의 침략을 받아 송과 관계를 끊고 거란에 사대하기로 한 서희 외교를 떠올렸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고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평소 야만스럽다고 생각해온 거란에 사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대를 현실적 외교 정책으로 활용한 것이죠. 여진족이 세운 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전까지 황제국 고려의 해동 천하를 구성하는 번국으로 취급했던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명나라와 명분이 정해져 있으니, 신라와 고려가 당?송에 사대한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라거나 “우리와 명나라의 관계는 고려와 금, 원의 관계와 다릅니다”라고 한 데는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한마디로 조선은 고려의 경험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묘청의 반란을 진압한 뒤에는 그를 지지했던 민심을 어떻게 수습할지가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삼국사기》입니다. 이 책은 풍수와 칭제건원론을 앞세운 묘청을 진압한 후, 그 정당성을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하고자 편찬한 것입니다. 고구려의 수·당에 대한 무모한 전쟁은 잘못이고, 신라의 사대 외교야말로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 것이지요. 묘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