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라는 말로 지칭하건, 유학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컨퓨셔니즘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그 대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기 때문에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유교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무리해서 유교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들기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때 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역사학자 유진 웨버가 묘사하는 19세기 말 프랑스 향촌 사회 모습 역시 놀랍게도 '유교적'이 다. 남녀 간의 성차에 대한 강조, 남아 선호, 가족 유대 등 당시 프랑스 향촌 사회의 특징은 이른바 단순화된 '유교' 사회의 특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유교'라는 단어는 제반 현상들을 범박하게 지칭하는 용어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특정 사회의 독특한 면모를 적시하기에는 너
이렇게 해서 드러난 춘추시대의 모습은, 『논어』에 담긴 공자의 입장 역시 당대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공자는 도대체 예상할 수 없었던 발언을 갑작스럽게 꺼내놓은 천재가 아니라, 이미 선례가 있는 입장이나 경향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낸 사람이었다.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보면, 공자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동아시아 사상 연구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흐름이 있었다. 당시 영어권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그토록 숭배했던 주희 같은 인물도 단순히 천재적이고 위대한 사상가라기보다는 당대의 문제에 반응했던 여러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연구하는 흐름이 새롭게 학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사람과 함께 구성한 담론의 일부로 과거의 사상을 바라보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
누구의 해석이 옳든, 텍스트의 의미는 그 텍스트의 저자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텍스트가 저자의 입과 손을 떠나 공적인 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의미는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침묵이 다른 것에 대한 발화로 해석되기도 하고, 다른 것에 대한 발화가 어떤 것에 대한 침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
하지만 공자가 침묵하겠다는 내색조차 없이 아예 침묵 해버린 사안이 있을는지 모른다. 『논어』가 제법 긴 글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글의 흐름과 리듬을 탐색하다가 어느 부분에서인가 공자가 침묵하거나 말을 삼가고 있는 기미를 알아차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어』텍스트는 대개 간결한 언명이나 대화로 분절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다짜고짜 침묵한 사안이 있는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