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루는 기술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어떻 게 마주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기 시작할 때 명상은 수행이 된다. 수행은 나선형의 계단과 같 다.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 때도 사실은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 반복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 마음의 패턴이 그만큼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불교나 요가 같은 수행 전통이 오랜 세월 축적해온 가치는 이
명상은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 핵심은 내 몸이 있는 여기에 마음을 함께 두는 것이다.지금 이 순간 에 나의 호흡, 나의 감각, 나의 생각을 두고 관찰하는 힘을 키워가는 훈련이다.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눈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지나갈 것이다.아까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일 수도 있고 ,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고, 책을 덮은 후 해야 하는 일거리일
의식 연구 분야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켄 윌버(Ken Wilber)는 이렇게 말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 명상을 길게 하는 것 보다는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규칙적으로 조용히 앉아 있을 시간을 하루에 3~4분 은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몇 분 동안 현재의 의식 속에 그냥 느긋하게 머문다. 하루에 단 몇 분이므로, 핑곗거리는 생각해내기 힘들 것이다. 그냥
"자신이 아닌 누구도 대신 괴로움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교수님은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이게 불교의 잔인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내 덧붙이셨다. "그렇지만, 이게 멋진 점이기도 하죠. 결국 내가 나의 괴로움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속에서 무언가 시원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그게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세 가 지 지혜, 문사수였다. 스승에게 배우고, 그 배움을 숙고하며, 삶으로 실천하는 수행. 지혜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사띠와 그 마음의 흐름을 분명히 알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 는 삼빠자냐(Sampajanna)가 함께해야 했다.삼빠자 냐는 단순한 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지금 어떤
켜켜이 쌓인 과거의 기억들이 문신처럼 남아 '구린 나'가 너무도 선명한데 어떻게 내가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무아는 자아의 부정이 아니었다. 단지 '고정 된 나'라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내가 나라고 믿는 나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 관계가 얽혀 생겨난 결과값이었다. 이 또한 영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사 라지는 감각과 감정처럼 변화의 흐름 위에 있는 존재였다. 과거의 기억
나에게는 내가 무지했음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연민의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그 용기 를 낼 수 있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다. 구린 나여도 제대로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되었다. 남들에게 쓸데없이 까칠했던 시선 역시도 내가 나 스스로를 모질고 까칠하게 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자애 명상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와 함께 불교 명상을 이루는 주요한 수행의 축이다. 눈을 감고 온 마음을 다해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내가 사랑받기를"이라는 문구를 반복한다. 이 문장의 주어는 점차 넓어진다. "그가 행복하기를"에서 "그들이 행복하기를"로, 그리고 "온 존재가 행복하기를"로 번져나간다. 자애 명상이 익숙해진 후엔 미워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감정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은 내 안의 신념,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만들어낸 것이라 는 이야기였다. 감정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해석의 결과였다. 감정은 언제나 느끼는 사람의 몫, 그러 니 치유와 회복도 그의 몫이었다. 내 감정을 누군가 의 탓으로 돌리면 잠시 편해졌지만 나를 통과하지 않 은 감정은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내 안에 쌓이고
수행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습관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마음의 습관은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가르침들과 맞물리며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고 그제야 모든 게 선명해진다. 친구나 연인의 감정을 살피고, 그 원인을 내 안 에서 찾는 건 성숙한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눈치 를 보는 건 초점을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맞춘 행위이 기 때문에 배려와는 달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