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남긴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비 사랑하듯 하고 나라 근심하기를 집 근심하듯 했도다 밝은 태양이 땅에 임하였으니 밝고 밝게 충성을 비추어주리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던 개혁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영원한 딜레마, 왕권과 신권 왕권과 신권의 조화, 컨력의 견제와
선택의 기로에 선 두 친구 성삼문과 신숙주의 이아기는 단순히 충신과 변절자의 대비로 만 볼 수는 없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각자 선택한 길이 달려 을 뿐이다. 성삼문은 의리와 절개를 택했고, 신숙주는 현실적 판단 실무적 능력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는 길을 택했다. 두 사람 세종의 신임을 받으며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문화 사업의 주역이었으나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1418년 양녕 대군을 폐위시키고 충녕대군을 후계자로 삼은 태종의 결정은 조선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충녕대군은 세종으로 왕위에 올라 우리 역사상 최고의 시대를 연출한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태종의 리더십과 그 기대에 부응한 세종으로 인하여 조선왕조는 빠른 기간에 정치와 문화의 꽃을 피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 태종과 양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