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학동들의 발이 맨발이었다. 이 섣달 추위에 신 없이 학 교엘 다니는 동포의 참상. 일행 중의 한 분이 한 학동을 불렀다. 조국에 들어와 처음 이야기를 나 눠보는 이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놀라는 듯했다. "아가, 왜 발을 벗었니?" 그러나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모두들 놀라서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였던 마을 사람 중의 하나가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물론 그도 그들이 누
열다섯 명이 모두 우리 일행이었다. 이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여자가 안미생 여사로 우리는 안스잔나로 불렀다. 김구 주석의 며느리였지만, 김인-김구 선생의 장남-씨가 돌아가자 시아버지의 비서로 일했고 임시정부에서 재충칭 애국부인회의 일을 거들었다. 사실 안 여사는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딸이라는 것으로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 통역이 아니면 일선지구를 돌아다니는 아편 장사나 일군 위안소의 포주들까지도 하루아침에 광복군 모자 하나씩을 얻어 쓰고 독립운동가, 망명가, 혁명가를 자처하는 목불인견의 꼴이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타국에서의 동포 재산을 이런 자일수록 앞장서 몰수하기가 일쑤였고, 광복군도 1,2,3지대로 나뉘어 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임시정부나 광복군도 그
이 임정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약 50여 명의 정부 요원들이 기숙하고 있었고 대부분이 독신으로 이 청사 안에서 기거를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임정 청사는 대부분 이들의 침실로 사용되고 있는 딱한 형편이었다. 충칭 시내에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예외지만, 지겨운 망명생활을 흙방에 침대 하나씩을 놓고 계속하고 있는 늙은 요인들의 모습은 한심 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임시정
이 옴이라는 병은 한번 걸리기만 하면 사람이 천해지기 짝이 없는 피부병이다. 손가락 사이, 발가락 사이, 겨드랑 밑 그리고 또 그 밖의 곳 등 아주 약하고 피부가 상접한 부분에만 골라서 퍼지는 병으로 한번 옮기만 하면 잠시도 긁지 않고는 못 참도록 가려운 병이다. 긁어도 긁어도 시원하지 않고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 병이다. 심해지면 전신에 퍼진다. 주막의
햇볕을 마주하고 쭈그리고 앉아 쉴 때 엔 이 휴식을 방해하는 이의 소탕전에 또 신경을 써야 했다. 잡다 못해 누빈 동복을 벗어 뒤집어 들고 활활 털고 손바닥으로 슬슬 쓸면 후두둑후두둑 보리알 같은 이가 깨끗한 눈바닥 위에 떨어져 바동대 다가는 빨간 색깔로 변하여 얼어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빈 동복이라 그 누빈 바느질 틈에 끼인 놈은 털어도 털어도 떨어지지 아니했고, 색
김준엽 동지와 나 이렇게 단둘이서 서로 몸을 의지하고 걸어가는데 무엇인가 난데없이 우리 머리 위로 휙 날아가는 것을 의식했다. "......" 우리가 머리 위로 무엇인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날쌘 호랑이가 언덕에서 뛰어, 바로 우리보다 네댓 발자국 앞에 소리도 없이 사뿐 내려앉았다. '아, 호랑이다앗!' 이 소리는 끝내 입 밖을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