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여 있는 세계다. 내가 생각하기에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가 거의 같은 어둠이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악을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은 모든 것의 색깔과 맛을 달라지게 만든다. 악을 무시하거나 잊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가 악에서 도망
말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말하고 나면, 당연히 가족을 잃는다. 마을도 잃고, 어린 시절도,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잃는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진실을 얻기는 하지만,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힘의 불균형 앞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떤 때는 숨어야 하고, 그늘 속에서 기다려야 하고, 할 수 있다면 달아나야 한다.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온다. 벗어나서, 피난처로 옮겨 가는 날이 온다. 그런데 피난처에 있으면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어둠을 벗어나도, 어둠이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피해자들은 궁지에서 벗어나고 다른 피해자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사고방식,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것은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한 목표라는 사고방식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하여 충격을 견뎌 낸 사람을 초인으로 만드는 식으로 위계를 짓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