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형님이시여."그때 아버지가 새삼스레 그리웠다. 수양은 조카의 성장이 기다려졌다. 어서 장성하여 친정을 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아무리 못해도 형 왕 때보다 더 침체되지는 않을 것이리라, 그럴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속으로 되뇌였다. 어서 자라소서. 어서 자라소서. 그는 그렇게 기다렸다. 조카님이 영특하시든가 아니면, 조카님이 몸소 자신
이렇게 생각하자 수양의 마음에는 다시 만만한 야심이 솟구쳤다. 자기의 손으로 자유로이 조종할 수가 있는 이 방토··· 여기 꽃을 피우자, 훌륭한 열매를 맺게 하자! 그러는 일방으로는 자기는 현재 단지 수양대군일 뿐이라는 자기의 지위가 생각났다. 국왕은 역시 조카님이요, 자기는 왕의 사사로운 숙부요 영의정일 뿐이다. 조카님이 그저 그런 말씀을 하신 뿐이지, 선위가 결정된 바도
"믿는다. 너를 믿는다." "지성껏 보답하오리다." "또 한 가지, 동궁의 건강이 좋지를 못해.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건 지나친 일일는지 모르나 동궁께 불행이 있는 날에는 세손의 장래까지 아울러 당부한다." "예. 신의 수흙(목숨)만 넉넉하오면 대대로 몇 대까지라도 주공의 역할을 다하오리다." "네가 참기 힘들만치 동궁이 괄시를 할 때는?" "그래도 참겠습니다.""참다 참다 참지 못하게
더욱이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처분' 이나 벌을 내리는 결정을 할 때면 스스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의 처분 때문에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지금쯤 형벌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면 무섭고 떨리기까지 했다. 그럴 때는 진정으로 왕위가 귀찮게 느껴졌다.P.424 중에서
퍽!퍽! 철퇴가 살과 뼈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몇 번 힘차게 울렸다. 처음에 외마디 비명을 한두 번 내뱉었을 뿐. 종서 부자에게서는 다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수양은 두어 걸음 물러서서 철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땅에 엎드려 있는 부자를 말없이 굽어보았다.P.302 중에서
지금 어린 임금이 위에 오른 이때, 그냥 버려두면 더욱 쇠퇴 하여 갈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려 하는 힘은, 그 자리에서 받아 멈추기만 하려 해도 힘들 것이다. 하물며 다시 위로 올려 밀려 하면 어지간한 힘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두면 아주 떨어지고 말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도로 위로 올려 밀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P.21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