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을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야 잊지 말아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 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나 태주 다시 중학생에게 전문
세례가 아니어도 괜찮다. 끝까지 아이에게 뭔가 같이 할까 물어보고 아예 짜증을 받아냈다. 시간은 의미했었다. 아이는 내내 귀찮아 했으면서도 엄마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안심을 했다. 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나? 시험한 것도 같다. 아이는 사랑받기 싫으면서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사랑해 주기 어렵지만 사랑하고 싶어 한다. 돌아보면 늘 정답은 사랑이
나는 아이가 명문대생이 아니라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길 바란다. 아침에 잘 일어나고 아침밥 먹고 사람이 물으면 대답하고 가야 할 학교는 가고 돌아올 시간에 돌아오길 바란다. 그것마저 욕심이라고 말하면 정말인지 울고 싶어진다. 철없는 우리 아이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내가 게임으로는 알려 버리는 시간이 사실인 인생에서 가장 귀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며칠 손날뼈가 욱신거리고 손목까지 부어서 끙끙 앓았다. 남편이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나는 나를 벌주고 싶었다. 나는 더 아파했다. 손날뼈가 부러졌기를 손목인데가 나가기를 바랐다. 되도록 오래 손목이 아팠으면 했다. 내 아기를 낳고 어르고 먹이던 손이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했다. 그 사실을 내 순간 몸이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춘기는 무엇일까? 우리는 부모가 되어 그것을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거 사춘기는 대체 무엇인가?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사춘기는 아프락사스 같은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했던 것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이 구절에서 새
헤르마네세라니 데미안이라니 언제적 이야기인가 싶지만 때로는 오래된 텍스트 안에 진실이 살아 있다. 그래서 아예 사춘기에 당황스러울 때 대미안적 필터를 씌워 아이를 바라본다. 저 브루퉁한 얼굴 안에는 분투하는 새가 있다. 아직 날개도 펼쳐 묻지 못한 새가 끙끙거리고 있다 있다고. 부모된 자는 숙명처럼 그 새를 기다려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