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이 비옥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막연하게, 듬성듬성, 이런저런 방 점으로 토양을 가꾸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어떤 필요의 씨앗이 뿌 지면 그 토양에서 건강한 새싹이 자라길 빌 뿐이다.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
물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릴 적 꿈꾸었던 그런 말짱한 나이는 없다는 걸.?60이 되어도 내가 꿈꾸는 것처럼 무심하게 고요할 리 없다는 걸. 오늘은 여기가 아파 우울할 것이고, 내일은 저기가 골칫거리일 것이다. 내가 괜찮은 어떤 날에는 남편이 말썽일 것이다. 그때 내게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이 하기 싫어 몸부림일 것이고, 그때 내가 백수라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의 가계가 걱정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