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는 '나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 뒤로 숨었던 게 아닐까? 나 자신도 어른이면서아닌 척하느라고, 겸손한 외양을 하고 존경하는 어른의 이름을 읊어온 것 아닐까? 그분들을 마음으로부터 공경하는 것과 별개로,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되는건 먼 훗날의 일로 미룬 것 같다. 어른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 말은 '훌륭한 어 른'한테 여러 책임을 떠넘겼다는 뜻도 된다. 내
그러니 '노 키즈 존'이 없는 세상은 그저 이상일 뿐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 키즈 존'은 사라져야 한다. '어린 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어린이의 정체성이다. 정체성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면 '노 휠체어 존'이, '노 시니어 존'이, 또 '노 무슨 무슨 존'
p.225 무력감이 거의 권태가 될 때, 변하지 않는 세상이 걱정스러울 때, 흔적 없이 사라진 거대한 동상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보자. 인생은 소중하지만,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고. 혹시 내 삶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하나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존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