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제가 재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의 새 남편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소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저 사소한 것들만 궁금해했습니다. 제가 지내는 곳이 산과 가까운지 바다와 가까운지, 집 안에 저만의 방이 있는지, 무엇을 그리거나 쓰고 있는지, 산책은 아침에 하는지 저녁에 하는지······. 그런 질문에 일일이 답하다 보니
지난 일은 다 잊고 살아. 잊으려고 애쓰지 말고, 몽땅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아. 처음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잊고 살라면서 잊으려고 애쓰지 말라니. 애쓰지 말라면서 기억을 몽땅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라니.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말들로만 이루어진 그 문장을 가만히 곱씹고 있다 보면, 점점 더 아리송해져서 이내 언니도 아무 말이나 한 건 아닐까 생 각하게
그 과정이 무척 자연스러워,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운명 이었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그 사람이 노동을 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무력과 불합리한 거래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 안에 내재된 어떤 폭력성을 감지했을 때도, 그것을 내가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을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라는 단어는 아주 편리했다. 세상에는 원래 작은 사람이 있고 원래 큰 사람이 있다. 원래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래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원래 작은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원래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뿐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에게 진 빚을 생각하면······ 그러나 준은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더 이상 빚이 아니라고. 너는 이미 그 사람이 너에게 해준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그 말에, 머리에서 번쩍 번개가 쳤다. 그렇구 나, 나는 이미 대가를 치렀구나. 더는 부채감을 가질 필요도, 염치를 생각할 필요도 없구나. 그 순간, 오랫동안 발목에 걸려 있던 족쇄가 반으로 쪼개어지는 것
만약 엄마가 진짜 일기에 쓴 대로 행동했다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빼앗아 갔던 화재가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유년 시절의 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니, 솔직히 그걸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 내 기억 속에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내가 아버지의 손에 맞은 엄마와 엄마의 손에
하지만 그 사람은 몰랐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잊지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용서하는 대신 기억했어야 할 모든 일을 다 잊고 말았다는 것을. 나는 그의 상처를 기억했다. 내가 그를 대신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를 대신하여 그의 슬픔을 짊어지고 외로워진 것이다. 이제는 내가 언제 슬픔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짊어지면 바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