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책과 나 단둘이 남은 것만 같은 고요한 밤, 책이 나에게 작은 이해 한 쪽을 나눠 주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찰나에 잠시나마 이 불가해한 세상이 이해되고 내가 깨우친 사람이 된것같은 황홀한 착각에 빠진다. 혼자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상실, 비탄, 고통에 대한 이해 역시 책의 도움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읽는 것으로 성취를 바라지도 대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기할 것도 없었다. 읽는 것에 있어 내가 질투할 유일한 대상은 미래의 나뿐이었다. 적어도 걔는 나보다 많이 읽었을 테니까.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짜릿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무엇으로도 증명할 필요 없이 오로지 나의 관성으로만 지속하는 일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루
우연히 읽은 기사에 소개된 책, 블로그 주인장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띠지에 적힌 추천사가 좋았던 책, 내가 흠모하는 인물이 '인생 책'으로 꼽은 책 등을 바탕으로 만든 나만의 목록은, 이를테면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이다. 데이터는 절대 알지 못할 우연한 만남들이 중첩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누구의 것과도 같지않은. 그리하여 그 자체로 고유한. 나라는 인간.
독서에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기억력과 요지를 파악하는 능력만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골몰하고 의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읽는 내내 철저하게 장악할 수 있는 글보다 휘말리고 휩쓸려서 어찌할 줄 모르겠는 이야기가 결국엔 우리 발목을 오래 붙잡으니까.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편협한 독자이고, 어떤 기준에서는 줏대 없는 독자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내가 복잡한 독자인 것이 좋다. 양서와 양서 아닌 것을 오가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독자인 것이 그런 자유야말로 내가 책 읽기에서 가장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독서는 어쩌면 시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봄에는 꽃을 보고 겨울에는 눈을 보고,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고, 그 모든 것을 다 하고도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어느 무료한 주말 낮에 '책이나 한번 읽어 볼까?' 하고 시작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한 권을 다 읽었는데 마침 그 책이 너무나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