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상황에 노출이 되면 그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되잖아요. 저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마치 이소의 작품 속 알루미늄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진 상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제가 무감각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그런 상태요. 그래서 악몽을 반복해서 꾸면서 도 그 악몽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결국 어머니를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거든요. 뭐라도 듣는 순간, 제가 들 은 것에 영원히 갇혀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덩달아 아수라장이 되어 있던 안방의 모습도 절대 잊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죠. 그렇지만 선생님, 선생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악몽에 갇혀 있는 상태였답니다. 다만 그걸 모르고 있었을 뿐이에요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어떤 비
악몽의 소리는 고막에 깊게 새겨졌고, 사는 내내 귓속에서 울렸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놀라운 일도 그 소리를 헹궈내는 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선생님 같은 심리상담사들은 이런 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르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 단어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그 고통이 삶에 남기는 흔적을 대충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나는 그저 아침마다 마실 차를 종류별로 알맞게 내리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 산책길에 피어 있는 모든 잡초의 이름을 아는 전문가가 되고 싶고,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 나도 안다. 이런 것들에 '전문적'이라거나 '전문가'라는 표현을 붙일 수 없다는 걸. 그러나 세상에는 여느 전문직보다 더 많은 품과 끈기를 요구하는 어떤 생활 방식이 존재하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