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식이 늙은이의 장례식보다 가기 싫다. 결혼식은 어쩐지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생활이란 화사한 생명과 연을 끊는 것이다.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자질 구레한 일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화사한 마음이 생기면 불륜이며, 나 같은 할머니에게는 범죄나 다름없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인식은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뻔히 질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도망치는 인생은 비겁하다. 혹시 마작이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게임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프로는 먼 곳을 바라본다. 패 건너편의 희망을. 인생은 도중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눈앞의 욕망에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먼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정보의 쓰레기 조각을 전부 40인치 텔레비전을 통해 접한다. 예순아홉 먹은 내가 동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서, 쓰레기 조각을 자기네들 좋을 대로 편집한 방송을 보면서 화내건 웃건 간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중학교 1학년짜리 같은 질문을 해보지만 역시 모르겠다. 사람은 무력하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좋을 대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