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술이다'라는 견해를 전제(13)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 1.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14) 2.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가정.(14)-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나'라는 말의 배후에 있는 실재는 바로 이러한 핵심이며, 우리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확신은 이러한 실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아의 지속성에 대해 신앙을 갖지 못하면 동일성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위협받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며, 이때는 다른 사람의 찬성이 동일성에 대한 우리 감정의 기초가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성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이다. 이성의 배후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이다. 객관적이라는 것, 곧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로서 꿈꾸고 있던 전지전능의 꿈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랑의 기술의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곧 사랑은 자아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하고 있으
정신 집중 훈련이 처음엔 어려우리라. 마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처럼 생각되리라. 이것이 인내가 필요하다는 의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일에는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고) 억지로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사실상 우리는 결코 정신 집중도 또한 사랑의 기술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인내가 어떤 것인지 알려면 걸음마를 배우는 어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의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 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