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비록 내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내 몸과 마음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득 채워 주었다. 이제 내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걷고 있다
달팽이의 무덤을 지나며 나도 먼 훗날 내가 선택한 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싶다고, 그렇게 온전한 나로 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생의 마지막 문장 뒤에 찍힐 마침표 역시, 서두르지 않고 찾아낸 가장 나다운 자리에서 고요히 맺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예전의 나는 겁도 많고 체력도 약해 혼자 여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막연히 나이가 들면 커다란 가방과 카메라를 메고, 스케치북을 든 채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다고 꿈꿨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풍경들을 마주하며 그 모든 감정을 나의 이미지로 소유하고 싶었다. 나는 어느새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그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얼마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낯
' 그저 이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충분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은 찾아온다. 그리고 슬픔과 괴로움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듯, 이 모든 감정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삶이 된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슬프기만 한 삶도 있을 수 없다. 내가 찾고자 할 때 행복도, 고통도, 그곳에 있다.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 마다 나의 삶이 그들로 인해 비로소 채워지고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이 삶이라는 바다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번 뿐인 이 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모두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라본다.
아무런 걱정도 슬픔도 없던 시절이었다. 언니와 싸울 때면 혼이 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부모님은 이제 이곳에 없고 나는 어느덧 마흔이 넘었자. 지금의 내가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 을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떠밀려 갈 때도 있었지만 이전의 삶의 종착점을 향해 노를 저어 가고 있다.
겨우내 앓는 사이 생일이 지났고, 비로소 마흔이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뒤 나를 짓누르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마흔이 되어서야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슬픈 날들이었지만, 지 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그저 숨 쉬고 있다는 것만 으로도 행복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