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은 제지 공정에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동아시아와 이슬람의 종이는 밀가루나 쌀의 전분을 첨가해 흡수성을 억제하는 가공을 했다. 그 결과, 표면이 매끄럽고 잉크 번짐이 줄어 필기가 수월해졌다. 반면 이탈리아의 제지업자들은 전분 대신 동물성 젤라틴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한층 투명하고 빳빳하며 질긴 종이를 만들어냈다. 이는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중국 자기에 대한 사랑은 아시아에도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도자기가 생산되었지만, 대부분은 도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말, 일본 도자기 역사에 전환점이 찾아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도공들의 지도자로 전해지는 인물이 이삼평이다. 일본에 도착한 이삼평은 도공 열여덟 명과 함께
'유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유리창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한 유리창이지만, 근세 이전의 유럽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회화에서도 유리창이 묘사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유리창이 근대에 와서야 발명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최초의 유리창은 1세기 로마 제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