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발레는 무엇보다도 도피를 의미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발레 수업에 갈 수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탕뒤 생각에 집중하느라 끔찍한 부모님 생각을 모조리 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시내에 가는 것 또한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나는 시내를 좋아해서 언젠가 시내에 자리를 잡고 눌러 살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적어도 이 다짐 하나만은 나중에 실현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발레 수업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비좁고 허름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지금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가장 우아한 예술을 배우는 행위가 오로지 외풍이 숭숭 들이치고 배관은 툭하면 막히고 벽지도 벗겨져 너덜너덜한 오래된 건물에서만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내 마음속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불안에 시달렸다.
수업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명료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이번에도 어머니가 옳았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만 그 방법대로 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은 다음의 단계를 따라 이뤄졌다. 먼저 어떤 동작은 언제,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다음, 지시받은 대로 했다. 모든 것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경직돼 있었다. 수업은 고통스럽고 지루했는데도('반복
그 첫째 날, 나는 겁에 질려 기절하지 않으려고 바를 붙득고 매달렸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발레라는 세계의 모든 것이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자아이에게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발레 무용수가 뿜어내는 딴 세상 존재 같은 아우라는 수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비슷했다. 발레에 끌리는 사람은 규율과 훈련을 바라게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