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무엇이 성벽의 재료가 되는가. 첫 번째 재료는 자기 언어다. 자신을 설명하는 말이 타인의 입에서 빌려 온 것이라면, 그 자아는 언제든 같은입에 의해 부서질 수 있다. "넌 너무 예민해", "넌 너무 둔해", "넌 너무 욕심이 많아, "넌 너무 소극적이야." 누군가가 던진 이 한 줄의 평가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사람은 그 말의 노예가 된다. 자기 언어를 가진사람
물론 이 오만에는 함정이 있다. 진짜 오만과 가짜 오만을 구분하지 못하면, 자신의 무지와 무례를 자존감이라 착각 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짜 오만은 듣지 않는다. 진짜 오만 은 듣되 흔들리지 않는다. 가짜 오만은 자신만 옳다고 외친다. 진짜 오만은 자신의 길을 갈 뿐, 옳고 그름을 큰 소리로 다투지 않는다. 가짜 오만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진짜 오만은 증명할필요를 느
진짜 독이 되는 타협은 따로 있다. 자신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가치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종류의 타협이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양심을 접어 두는 순간,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로 자신의 직관을 묵살하는 순간,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기준을 낮추는 순간. 이 세 가지 문장이 한 사람의 입에서 반복되기 시작하면, 그는 이미 독을 일상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대면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묻는 일이 고통스러 운 이유는, 그 과정에서 일말의 거짓이나 타협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자위하기는 쉽다.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변명하기도 쉽다. 그러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는 순간, 그 모든 자기 변호는 무너진다. 그 무너짐을 견디는 일이 곧 성장이다. 자기
에머슨이 강조한 자기 신뢰란 결국 이것이다. 자신의 직관이 외부의 어떤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무거운 자각. 그 것은 오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겸손한 형태의 책임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며, 자신의 실수조차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단지 누군가에게 그 답을 확인받고 싶은 것은 아닌가?"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답은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있다.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는 진짜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책임지기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입을 빌리면, 그 결과의 무게도 나누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누어진 책임 속에서, 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자기 본성을 무자비하게 믿는다는 것은, 자기 본성을 신성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본성이 완벽해서 믿는 것 이 아니라, 그 본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출발점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다른 출발점은 없다. 누구의 본성을 빌려와 자기 인생을 시작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결, 이 떨림, 이 직관을 가지고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서 이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