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은 결코 일자리의 부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노동의 종말은 본질적으로 '노동 가치의 종말'이다. AGI 임계 점은 노동의 종말일 뿐 아니라, 가치 판단의 중심이 인간에서 이탈하는 순간이다. 노동은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던 핵심 장치였다. 노동이 구조적으로 불필요해지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서의 위치를
따라서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기계가 인간처럼 할 수 있는가?" 또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어쩌면 다음처럼 훨씬 더 구체적으 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인지능력과 감정 능력이 개입되던 일과 과업은 어떤 '기능'으로 분해될 수 있는가? 그중 무엇이 기계로 이전되고 무엇이 인간의 책임으로 남을 것인가?"
인공지능 기술 혁신으로 인한 중산층의 구조적 해체는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불안정만 야기하는 게 아니다. 일이 줄어들면서 노동의 형식과 의미도 변화한다. 우리가 기술의 함정에서 벗어나 변화된 세상에서도 삶의 수준을 유지하며 의미 있는 삶 을 살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근본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노동의 의미가 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던 노동의 가치가 변화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의 절대화는 우리를 더욱 기계에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의 변화이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대체되는 것은 단순 반복적인 생산직과 사무직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로 여겨졌던 지식노동도 인공지능과 로보틱스의 발달로 인해 대체 위험에 놓여 있다. 산업용 로봇이주로 제조업의 물리적 과업을 자동화한다면, 인공지능은 인지적 정보 처리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보완한다는 점에서 영향 범위가 훨씬 넓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노동의 필요성이 사라져서 인간이 일할 필요가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일이 사라진 사회에도 인간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을 수밖에 없다. 노동이 기계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어도 우리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생산성의 증대로 얻은 소득과 부를 어떻게 정의롭게 분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