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죽음의 과정을 스스로 관리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죽음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독사가 더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일이 제대로 관리 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죽음의 과정에서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도록 사회와 개인이 조
한국 사회는 사회적 고립보다 고독사라는 '죽음'자체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생사학이나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별도로 검토해볼 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유독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도, 인생의 중요한 과정은 각자의 몫으로인식하고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태도가 있고, 죽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라는 말이 주는 기대감과 '각자 알아서'라는 말이
라이브러리 커넥티드 우리에게도 공공도서관같은 문화적 인프라는 이미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느슨한 연결을 촉진하는 주요 거점이 되고 있다. 서울시 공공데이터 포털을 통해 직접 자료를 내려받아 분석한 결과, 2025년 현재 서울시의 공공도서관(교육청 도서관 제외 173개소) 이용자는 361만 183명이고, 연령별로는 40대, 30대, 20대, 50다 순으로 이용자가 많은 것으
지금은 비록 건강하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라도, 가족 말고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부족하다면, 나부터 주변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어본 사람은, 훗날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도 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다.
나는 이 영화(혼자 사는 사람들)를 통해 이런 감각을 나누고 싶다. 1인 가구는 혼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아차려지는' 존재다. 언제든 떠날 동네라는 생각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부질없는 에너지 소모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있는 방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불안을 견디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든다면, 주변에
나는 정책이 있음에도 그 정책이 당사자에게 닿지 않는 이유가, 정책의 주인공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공급자 위주의 사회복지 정책은 이렇게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와 제도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냈다. 제도는 있었지만 당사자에게 닿지 않았고, 결국 필요한 순간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 대상이 된 지 약 1년 8개월 만에 생을 마감한 셈이다. 노동 능력을 잃어야 비로소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준영 씨는 몸이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망가질 때까지 일하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필요했던 지원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고독사는 흔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나쁜 죽음'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 죽음을 '좋은 죽음'을 ㅗ이해할까 ? 한국 리서치는 2025년 5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 존엄사와 웰다잉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같은 해 7월에 공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신체적 고통 없이 평온하게 임종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