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세상과 사람을 더 정확하게 읽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향해야 할 질문은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왜 이렇게 보고 있 을까? 나는 왜 이렇게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문제를 보는 해상도는 바깥을 향한 기술에서 나를 포함한 태도로 바뀐다. 그때부터 우리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 려는 사람을 넘어, 문제
우리는 대부분 충분하지 않은 정보 속에서 움직인다. 모든 맥락을 다 알고 나서야 판단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판단은 필요하다. 다만 그 판단이 너무 빨리 굳어 단정이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 은 복잡하고, 문제는 처음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조건을 품 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본 화면이 전체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
그날의 컨디션, 지나온 경험, 감정 상태, 처한 상황, 말하 는 방식, 배운 습관, 감당하고 있는 압박 같은 것들이 한 행동 안에 섞여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런 맥락이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본 장면 하나만 으로 그 사람 전체를 다 알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 을 한 번 더 들여다보자는 말은 잘못한 사람을 감싸주자는 뜻 이 아니다. 내
누군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 행동 하나를 보고 우리는 쉽게 결론을 내린다. 이해가 안 된다.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 는 순간, 사람을 바라보는 해상도는 더 올라가지 않는다.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감정이 먼저 결론을 내려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