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선한 본성의 소유자여서도 아니다. 그들의 호오(好惡)는 전통이거나 학습된 관념이다. 반면 일상은 구체다. 몸 쓰며 노동한다는 것은 몸으로 구체를 실천한다는 것, 어떤 관념도 그 구체성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래서 촌구석의 낡디낡은 노인들이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선진적일 수 있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은 다들 그랬다. 고통이나 슬픔은 물론 자신의 비루함, 열등감 같은 것은 저 수면 아래 깊숙이 묻어놓고 수면 위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살았다. 물론 수면 아래 묻어두었던 묵은 상처나 감정을 일순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더러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고 걸러내는 방법을 숙련하면서 찌니들
죽이는 니가 힘들겄냐, 죽는 쩌것들이 힘들겄냐, 양촌댁은 아들 편이 아니라 잡초 편을 들었다. 어머니 말이 옳기야 했다. 잡초도 가만 놔두면 고추나 가지처럼 적당히 크다 멈출 테지. 제대로 크지도 않았는데 싹둑 잘라내니 어떻게든 살려고 기를 쓰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게 잡초의 운명이고 자나 깨나 잡초를 베어야 하는 건 농부인 그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