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글쓰기에는 로고스 중심주의와 이를 지배하는 개념적 대립의 궁극적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어쩌면 밝은 미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는 LLM이 그동안 비난받아 온 특 성, 즉 어떤 것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글을 쓴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LLM이, 그리고 이 기술이 언어와 글쓰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
옹(1995)이 묘사했듯이, 글쓰기가 "말의 기술화 thetechnologizing of the word"라면, LLM은 글쓰기의 기술화이다. 그러면 LLM이 생성한 텍스트는 사고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에서 파생된 글이 된다. 일반적인 사유 방식으로 보면, 이러한 글은 화자의 생생한 원래 목소리와 의도에서 두 번이나 분리된 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처럼, 음성 언어가 사유의 직접적인 기호이고,
슬라보예 지젝은 자크 라 캉JacquesLacan 의 혁신적인 이론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Zizek 2008b, 3쪽). 당연히 우리가 진리에 도달하는 것(우리가 진리에 도달했다고 확 신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단지 끝없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왜냐면 언어는 궁극적으로 자기 지시적이며, 궤변, 궤변적 수사 훈련, 그리고 진리 그 자체를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 를 그을 방
LLM은 기존의 편향을 재생산함으로써 언어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언어가 젠더와 인종적 편향을 내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Caliskan, Bryson, and Narayanan, 2017). 이런 이유로 LLM은 비판적 성찰의 대상 그 이상이다. 즉, LLM은 사회의 어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나아가 규범 윤리와 정치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술 desc
즉,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LLM의 문제는 세계를 표상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기보다는, 그 결과물이 마치 세계를 표상하는 언어 게임에 속하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LLM은 다른 게임과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언어 게임도 하고 있지 않다. 단지 특정 언어 게임을 흉내낼 뿐이다.
바르트와 푸코가 21세기의 LLM이나 생성형 AI를 염두에 두고 그런 주장을 했던 것은 분명 아니지만, 저자성에 대한 이들의 중요한 연구는 오늘날 소통 방식의 AI와 저자성에 대한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LLM은 바르트와 푸코가 이론화했던 것을 실행하면서 저자의 죽음을 현실화 한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이미 사용했던 로고스 중심주의 용어를
다른 한편으로, 후기구조주의, 하이데거,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LLM에 마음이 없다는 사실은 큰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LLM이 맺는 언어와 의미와의 관계는 통제하는 중심적 주체(저자)와 원래의 의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LLM은 인간의 언어 체계와 우리가 생활세계와 맺는 그 관계에 의존할 수는 있지만, 인간 언어 사용자들도 이미 존재하는
기호는 항상 어떤 체계나 구조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의미는 단어와 다른 기표들 사이의 차이와 관계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주의 언어학의 통찰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언어의 구조는 이미 우리의 현실 인식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형성한다. 데리다는 의미에 대한 이러한 구조주의적 관점을 한층 더 발전시켰지만, 구조주의가 처음 주장했던 만큼 의미
이런 관점에서 언어는 더 이상 - 자율적인 인간 주체가 마음대로 다루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언어의 지배를 받거나 그 수중에 있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을 때 시사했듯(Hidegger 1977, 193쪽), 우리는 언어 안에서 그리고 언어를 통해 살아간다. 따라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매개체나 표상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곧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 그 자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9세기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이렇게 주장했다. "언어에는 오직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더 중요한사 실은 일반적으로 차이란 그 차이를 성립하게 해주는 긍정적 항을 전제로 하지만, 언어에는 긍정적 항* 없이 오직 차이만이 존재한다"(Saussur 1959, 120쪽). 따라서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기호는 그것이 어떤 언어의 어떤 기호이든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