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스가 예측했듯이 성형외과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 그가 공식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 앞장서서 나섰을 때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오늘날 외모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무한히 많아 보이는 미용 수술과 시술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유방 보형물 이식, 복부 성형, 지방 흡인, 얼굴 주름 제거 등등. 대중은 점점 더 성형 수술에 매료되고 있다. 성형외과
전쟁 때 길리스의 혁신적인 활동은 의학사의 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단지 기능만이 아니라 미학도 고려하는 신세대 성형 외과 의사들을 배출할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코 성형술처럼 전쟁 이전부터 있던 성형 수술법도 있었지만, 기존 기법들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법을 상상하며 검증하고 표준화하는 일은 길리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가 전반적으로 성형 수술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서부 전선에서 충성이 몇은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군의관 프레드 알비는 이렇게 썼다. 〈인류에게 닥치는 모든 악은 언제나 어느정도 선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전쟁의 학살이 자극한 의학 발전도 그런 선에 속했다. 이 발전은 개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인류 전체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기여를 했다.
길리스가 전 세계에서 오는 열의에 찬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자신의 문을 활짝 연 것이 단지 협조적인 성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희망이 꺾이는 상황을 접하지 못한 열정적인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 했다. 그들의 열정과 소박함이 그로 하여금 수술실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더 밀어붙일 계기를 제공했다. 전쟁 때 젊은 자신이 스스로
길리스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블랙은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말 그대로 얼굴 절반이 날아가고 피부만이 남아 너덜거리며 턱뼈가 바스러져 손가락으로 만지면 모래처럼 느껴지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망설임 없이 매달렸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점점 길리스에게 탄복하게 되었다. 비록 일은 섬뜩했지만, 블랙은 곧 그와 의료
〈성형외과 plastic surgery〉라는 말은 1798년에 프랑스 외과 의사인 피에르조제프 드소가 창안했다. 오늘날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합성 물질이 등장하기 전에 그 단어는 성형하거나 조각할 수 있는 대상을 가리키곤 했다. 이 사례에서는 사람의 피부나 부드러운 조직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