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나는 음주로 인한 취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ㅣ 12층과 7층을 오가면 일어난 이 연쇄살인사건이 만치에 의한 살인사건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러기엔 계획적이고 목적이 선명했다. 범인은 오히려 술과 분노를 핑계로 댔다. 일단 술에 취해서 범행을 시작했고, 그 후 진술에 의하면 자신은 화가 나면 스스로를 컨트롤 큰한 수 없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허나 그의 살인
소년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키 작은 소년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부름에 신나서 달려왔을 것이다. 작고 약한 몸에 강인한 타투가 그려지면, 모두에게 좀 더 강해 보일 거란 기대에 부풀 었을 것이다. 그 부푼 마음 그대로 소년은 한 야산 지대에서 타투이스트와 만났다. 단 그의 몸에 새겨진 것은 멋진 타투가 아닌 잔혹한 죽음에 이르
그 후 나는 한 가지 마음먹은 게 있다. 누군가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면, 정말 복수가 하고 싶다면 순간적인 복수가 아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복수를 해야겠다는 것. 혹은 비생산적인 복수 대신 상대를 내 편으로 끝어들이기 위한 생산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의 끝은 수갑을 차는 일이라는 길 수사 전문지 취재 과정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수사연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은근히 토막살인사건을 자주 접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지?리는 생각은 이미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라졌다. 그 생각을 넘어서 사람을 어떻게 자르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수사 기자들이 사체 앞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것처럼, 살인자들 또한 사람을 죽인 두 사체 처리에는 좀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변해가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