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력간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거예요. 대졸자와 고졸자 간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큽니다. 이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문화적 격차로 이어지는 한 결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두 번째로 이 임금 격차를 좁히는 것이 끝나면 특성화고등학교와 같은 직업 훈련 중심의 학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거예요. 지금 한국은 첫 번째 조정 없이 두
그런 면에서 교육과 공부의 차이는 이런 것 같아요. 교육은 가르치는 것.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가. 즉 효율성이라는 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반면 공부라는 것은 나의 주관, 즉 1인칭 시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교육이란 말보다는 공부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써야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것, 익히고 싶
공부 중독의 비극적 역설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와 삶을 분리시키고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고요.
미디어가 점점 더 대다수의 시민들을 관전평, 품평을 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어요. 댓글을 달고, ARS를 돌리고,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하는 등등이 마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품평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의견을 말하는 것이 참여자의 입장이라면 품평은 구경꾼의 언어예요.
- 우리 사회는 지금 '공부 중'이라는 푯말만 든 채 사회로 나가지 않고 그냥 머물러서 나이만 계속 먹어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거죠. - 이것을 사회학적 관점, 즉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니까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 두려움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체와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