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솔직히 말하지. 어느 순간에는, 가끔은, 길을 잃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 내가 극도로 냉정하게 느껴질 때. 또는 내가 극도로 동물적으로 느껴질 때. 오래전부터 나는 내 말과 행동을 믿지 않았 지. 내 웃음을, 눈물을, 내 혀를 나는 믿지 않아. 물론 난 타인 역시 믿지 않아.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 해도 거기 엔 조건이 있는 거지. 내 예절과 호의, 외모와 지위, 흔히 인간성이 나
봄꽃들은 퇴색한 채 떨어지거나, 떨어진 뒤에 퇴색했다. 천천히 나는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고 있었다. 나는 철저히 내 과거 안에 있 었고, 시간은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기록이라는 습관은 은밀히 매 력적이어서, 앞으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끊이지 않고 병행되리 라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의 삶과 이 기록 사이에 가로놓인 쓸쓸하 고 단호한 침묵을 나는 느꼈고, 아마도 글 쓰는 사람
한때, 저것들이 내 삶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작업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L이 떠났다는 이유만은 아 니었다. 말하자면, 한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거기 불어넣을 수 있 을 만큼의 내 에너지와 시간이 모두 소진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지긋지긋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알게 된 것이란,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 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하 고, 그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내가 처리해야 한 다. 인내한다거나, 잊어준다거나, 용서한다거나. 어쨌든 내가 소화 해낼 수 있으며 - 소화해내야만 하며 - 결국 내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