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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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폼페이우스의 개선식 차례가 돌아 왔을 즈음 로마는 이미 개선식을 수차례 치른 터였다. 몇 사람이 거리 에 나오기는 했지만 군중이랄 수는 없었다. 슬라가 이들에 걸쳐 장염하 고 성대한 개선식을 치른 뒤 플라쿠스의 개선식은 가벼운 관심을 끌었 고, 무레나의 개선식은 그보다 덜한 관심을 받았으며, 폼페이우스의 개 선식은 아예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아무도 그의 이름
p******o 2026.09.21. 신고 공감0 댓글0
공권박탈 조치에 로마가 충분히 적응했다고 술라가 판단 하기까지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리우스의 일곱번 째 집정기에 있었던 며칠간의 도살에 비하면 이번에 벌어진 살육은 미 미하나마 덜 노골적이었다. 로마 시가지에 피가 철철 흐르지도 않았고 포룸 로마눔 낮은 구역에 시체가 높이 쌓이지도 않았다. 술라의 공권박 탈 조치로 살해된 자들의 시신은(희생자들의 장례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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