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나는 "잘 해주자" 또는 "갈등을 피하자" 혹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든 준다"는 구실로 진부하고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는 관계들에 매달렸다. 이제 나는 그렇게 사는 대신 방임하거나 '비그리스도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도전해 보고, 나의 필요와 나의 내적 에너지의 한계를 대면하고 생명력에 꼭 필요한 나의 영을 보호하는 쪽을 선택했다. 관계에 성시랗고 책임을
중년기의 가장 위대한 교훈 중 하나를 배운 것은 내가 졸면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1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질주했을 때였다. 깊은 구덩이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차 안에서 깨어난 나는 차를 다시 도로 위로 끌어올렸지만, 계속 차를 끌고 가는 동안 내내 "너는 거의 죽었었어. 너는 거의 죽었었다구"라고 중얼거렸다. 그것은 죽어야 하는 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었다. 그것은
나의 일기는 상실의 슬픔이 안겨주는 내적 고뇌에 대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 이미지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확인하고, 슬픔, 허전함, 분노, 우울함, 침착하지 못함, 상실의 슬픔과 관련된 다는 감정들을 알아보고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 한 이미지는 -힘겹고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으로-큰 맷돌 밑에서 갈리고 있는 곡식이었다. 내 삶은 일에서, 기도에서 -갈리고 견디어내
우리는 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우리가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설 때는 대답보다 물음이 더 많다. 이 물음의 영역이 한 응답자의 통찰력에 반향되어 있다. '나의 영적 여정을 묘사하기 어렵다. 잘 가다가 어디쯤에서 나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선 오솔길이 기분은 좋지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음을 제기하는 것 같다
그녀가 던지는 이런 질문에 대해 ㅣ곰곰이 새이각하면서 나는 내 기본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비전과 살아온 경험은 굉장히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내가 약속했던 서원들이 새로운 향기를 풍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독신 상태를 계속 유지하겠지만, 이 서원의 목적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에 있다기보다 사랑 안에서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되는 것
우리는 방해물, 변화, 빛으로 인도하는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한다. 고통은 종종 실패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고통은 실로 성장에 이르는 문이다. 또한 성장에는 나이와 무관하게 고통이 따른다. 때때로 이 고통은 무지에서, 빛에 매달리기를 그치고 우울함의 어둠과 친해지는 것을 배우는 데서 오는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