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 거야." 폴이 말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눈길을 들어 올렸다. "나 역시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다른 문제야. 다른 문제라고." 시몽이 말했다.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중간쯤에서 몸을 휘청하더니 그녀를 향해 일그러진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 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그녀는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길 때문일 수도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 되지 않아. 시몽이 폴에게 해주었던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얼굴의 음영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주름을 더 깊어 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손가락 두 개로 잡아당기는 그 탄력 없는 살갗이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 아가씨의 대열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시몽은 폴에게 ‘고독형’을 선고하는 동시에 자신과 사랑하면 사면(赦免)될 수 있음을 호소한다. 로제와 연애하면서도 그의 사랑에 연연하는 폴에게서 고독보단 익숙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리딩런
"시몽.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흠뻑 젖었겠군요." 폴이 말 했다. 시몽의 재킷 냄새와 목의 체취를 맡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온 그를 보고 그녀는 해방감과 흡사한, 예기치 않은 안도감이 들었다. "저는 정말이지 당신 없이는 못 살겠어요. 그동안 저는 공허 속에서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에요. 권태를 느낄 수조차 없었어요. 저 자신을 박탈당해 버렸어요.
편지에다 그녀는 '빨리 돌아와요.'라고 쓰지 않았던가. 그는 그 구절로 인해 자신이 지나친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보다, 그 구절을 읽고 어리석게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확신에 찼었다는 사실이 더 유감스러웠다. 그는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